▲정보가 많으니 구경거리도 많다. 누구든 한번 서점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유신준
어젯밤의 한밤중 소동을 끝으로 파란만장한 텐트 여행은 이제 종치기로 결정했다. 든든하게 짐을 두고 다닐 곳이 만들어지므로 부담 없이 무거운 책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친김에 헌책방도 찾아보기로 했다. 알아보니 중고DVD와 CD, 헌책을 함께 취급하는 큰 서점이 하카타역 앞에 있었다.
헌책방이라고 해서 대충 펴놓고 파는 곳이 아니다. 각 부문별로 상세하게 구분해 찾기 쉽게 제대로 정리해 놓았다. 일테면 전문 헌책방이다. 가격은 대충 새 책의 50%선. 만화 단행본 앞에는 사람들이 늘어서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빠져 있다가 늦기 전에 호텔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모르면 묻는 게 가장 좋다.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 주변지리를 잘 알거 같아서 이곳에 싸고 깨끗한 호텔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불쑥 끼어든다. 자기가 오랫동안 묵고 있는 호텔이 있는데 깨끗하고 좋은 곳이라는 것.
일이 잘 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데 나는 사람 복은 있지 않나 싶다. 그는 상세한 약도를 그려주고 전화번호까지 써준다. 내친 김에 아예 전화를 걸어 방이 있나 알아봐 주겠다고 앞장선다. 그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호텔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마쳐 버렸다.
장소는 하까다역 앞이다. 세미더블은 좀 더 싸다는데 이미 다 나가고 더블만 한곳이 남아있단다.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니 그리 크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이다. 게다가 창가에 공원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오랜만에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왔다.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 지는지. 여행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성공한거다. 단 사흘 밤의 텐트경험으로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의 고마움을 절감하게 됐으니까.
사람은 고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의 고마움을 깨닫는 법이다. 몇 번 되지 않지만 텐트생활의 불편함을 통해 일상의 감사함을 제대로 느낀다. 일정한 주거가 있다는 것이, 사면 벽으로 둘러싸여 편안히 잠들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방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침대에 누우니 내 세상이다.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바깥 걱정 없이 편안하게 쉬었다.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