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은 짐들과 끝없는 전쟁이더라

[부부가 함께 떠난 규슈 자전거여행기②]

등록 2006.10.07 08:47수정 2006.10.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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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길을 나서면 짐의 크기는 고생의 크기와 비례한다.
자전거로 길을 나서면 짐의 크기는 고생의 크기와 비례한다.유신준
자전거 여행이니 여행기간 동안 현지 이동은 자전거로 해결될 것이고, 여행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숙박이 문제였다. ‘헝그리 라이더’ 형편에 맞게 텐트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번거로운 설치과정을 피하기 위해 원터치 텐트를 준비하고 침낭도 트윈으로 구입했다. 텐트를 가져가기로 하다 보니 텐트 자체의 부피와 무게도 문제지만, 이것저것 늘어나는 짐들이 더 걱정이었다.


오죽하면 짐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1인용 텐트까지 고려되었을 정도다. 텐트는 잠만 자는 곳이므로 큰 공간이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게 자 본다고 하지만 모든 짐을 밖에 내놓고 자야 한다는 문제에 부딪혀 할 수 없이 2인용으로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잠자리를 준비하다가 보니 또한 걸리는 것이 바닥깔개였다. 맨바닥에서 그냥 잘 수 없어 발포 바닥깔개를 준비해야 했는데 그것도 상당한 부피다. 필요한 것이 하나씩 늘어나고, 짐은 줄여야 하고, 짐들을 상대로 전쟁이 시작됐다. 여행에 짐이 많으면 고생한다는 조언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자전거로 길을 나서면 짐의 크기는 고생의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늘어난 짐들을 보며 고심을 거듭하다가, 동그란 텐트 커버 안에 바닥깔개와 트윈침낭을 펴서 함께 넣는 데 성공했다. 좀 부풀기는 했지만 세 개의 짐이 하나로 줄었으니 얼마나 가뿐한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혼자서 탄성을 질렀다. 여행이건 인생이건 ‘짐 줄이기’는 필수다. 그러나 짐을 줄이고 가볍게 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배낭에 담는 짐은 한계가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많은 짐을 어쩔 수 없어 내 자전거 뒤에 작은 페니어 가방을 달기로 했다. 문제는 내 자전거가 뒤 짐받이가 없는 알로빅스 500기종이라는 것이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안장 대에 다는 알루미늄 짐받이를 구입하고 그것만으로 짐을 지지하는 것이 어려워 일반 짐받이에서 떼어낸 지지대를 아래쪽으로 덧붙여 겨우 해결했다. (궁리한 보람이 있어 이 짐받이가 귀국할 무렵 현지에서 늘어난 짐 50여 kg를 거뜬히 해결해주었다.)

자전거를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분해를 해서 포장을 해야 한다. 쓰지않는 옥매트 커버를 이용.
자전거를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분해를 해서 포장을 해야 한다. 쓰지않는 옥매트 커버를 이용.유신준
자전거를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분해를 해서 포장을 해야 한다. 시판되는 자전거가방이 있지만 옮겨야 할 자전거가 두 대나 되다 보니 구입비용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 어디선가 옥매트 커버를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나서 쓰지 않는 옥매트 커버를 찾아 넣어 보니 딱 들어맞는다. 커버에는 옥매트 무게를 지탱할 튼튼한 손잡이까지 달려서 자전거 가방으로 제격이다.


여행준비를 하면서 특히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여행 기록’이다. 소형 수첩을 2권이나 준비해 갔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억은 한계가 있고, 기록만큼 중요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좀 더 알차게 기록하기 위해 아내는 소형 비디오와 1시간짜리 테이프 5개를 준비했고, 나는 평소에 사용하던 작은 카메라 S1IS를 배낭에 넣어두었다. 카메라의 저장 메모리 1기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화질을 떨어뜨린 작은 화면으로 세팅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처럼의 여행기록을 고화질로 남겨둘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여행기간 동안 최대 600장 정도를 촬영할 수 있는 용량이 확보되었다.

대부분 처음 여행계획을 짤 때는 대충 머리로 그리고 느긋하게 시작하게 되지만, 2주 정도 앞두면 점점 구체성을 띠게 되고 출발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그건 그냥 시간의 블랙홀이 돼버린다. 여행의 설렘에 들떠서 하루하루 다가오는 여행일정에 빨려 들어가 버리는 느낌. 어어 하는 사이 금방 출발일이다.


출발 하루 전 배편을 부탁한 여행사에서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여권을 잘 챙기고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의 카멜리아 창구 앞에서 오후 6시까지 보잔다. 비로소 이제 가는구나 실감이 난다.

얼마 후 다시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 배표를 부탁할 때 자전거여행이라는 얘기를 듣고 참고삼아 선박회사 담당자와 통화해봤는데, 자전거를 직접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게 규정이 변경되었단다.

수하물 접수시간인 오후 5시 반까지 와서 절차를 마쳐야 한단다. KTX예약시간을 다시 계산해보니 접수시간까지 도착하기는 힘든 시간이다. 부랴부랴 철도공사 홈에 다시 들어가 기존예약을 취소하고 시간을 앞당겨 2시 5분 기차를 예약했다. 위약금은 조금 물었지만 번거로운 절차 없이 집안에서 편리한 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으니 인터넷이 얼마나 고마운지.

출발 당일 아침에 천천히 출발하려 했으나 그게 어디 쉬운가. 긴 여정을 앞두고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다. 시간에 늦어 허둥대는 것보다 일찍 도착해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편을 택하기로 하고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뉴스를 들으니 일본 아래쪽에서 규슈를 향해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좀 심란했으나 이미 꽉 짜인 계획을 어쩔 수가 없다. 모처럼 자전거 여행길에서 만나는 것이니 태풍도 즐겁게 경험해 보기로 했다.

기차 안에 자전거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출입구에 기대놓았다.
기차 안에 자전거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출입구에 기대놓았다.유신준
예정시간대로 대전에 도착해 예정된 주차장에 주차하고 사이버로 신청해 둔 외환은행 대전지점 창구에서 환전까지 마쳤다. 은행직원들은 친절했지만 환전을 위해 별도로 지정된 은행에 들러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했다. 기왕에 서비스를 하려면 환전 받을 수 있는 은행을 좀 더 다양화해 부산항에서도 환전할 수 있었으면 더 편리했을 텐데….

대전역에 짐을 내려놓고 플랫폼까지 자전거를 옮기는데 역시 짐 옮기는 일이 대단하다. 아무리 짐을 줄였어도 자전거를 포함해 다섯 개의 꾸러미가 생겼다. 거기에 배낭까지 포함하면 일곱 개나 된다. 역내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은 좀 덜었다. 짐을 몇 번씩 옮기는 부산을 떨고 어지간히 땀을 빼고 나서야 2시 5분 발 KTX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규정대로 자전거를 해체해서 커버에 넣었지만 폭이 넓어 기차 안에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승무원에게 얘기하니, 내려가는 편은 대개 좌측 출입문만 쓰므로 오른쪽 출입구에 기대놓으란다. 짐을 정리하고 정해진 좌석을 찾아갔다. 예약을 바꾸는 바람에 거꾸로 가는 역좌석이다. 불편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에 맞게 갈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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