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자전거로 돌고온 열정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오창경
그런 마음을 숨긴 채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며 약속 장소에 들어선 순간, 낯선 나라를 달랑 자전거 한 대로 여행을 할 만큼 강단이 있는 한 사내(?)가 아닌,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한 남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선입견은 완전히 빗나갔지만 그의 말처럼 '같은 무늬'를 지녔기 때문인지 우리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충남 청양 휴양림 관리 사업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유신준(47) 뉴스게릴라였다.
"올해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이라는 책을 읽고 자전거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대신 가을휴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지인에게서 놀러오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결국 두 가지가 자연스레 연결되어 자전거를 타고 일본에 가는 일을 계획하게 되었죠."
그의 자전거 여행엔 선구자가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부부 동반인데다 유명 유적지나 휴양지가 아닌 일본의 지방 소도시를, 종종 텐트에서 숙박하며 다닌다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냥 저질러 버린 거였죠. 항상 가슴 한 구석에서 일상 탈출의 음모를 꿈꾸고 있다가 그렇게 떠난 거죠."
평범한 중년 사내의 입에서 나온 대답치고 너무 파격적이었다. 전문적이고 현학적인, 뭔가 그럴 듯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술술 읽히는 편안한 문체와 그저 사람 냄새가 나는 그의 자전거 여행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 그래도 국내가 아닌 일본을 여행지로 선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8년 전 일본과 교류 연수를 하느라 구마모토에서 9개월간 살았던 터라 언어에 익숙했고 거기에 지인들이 있어서 일정을 잡았습니다."
낯선 거리를 누비고 다니며 새로운 풍물을 접하고 특이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며 '남는 것'이라는 게 유 기자의 여행관이었다. 그는 일본을 다니면서 거기도 '그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8년 전 일본 연수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방 소도시에도 우리나라 돈 환전소가 생긴 것. 소위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 교실도 많이 생겼고 TV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했던 사극 <대장금>이 방송중이란다.
일본 총리 딸의 즉석 파티 제안... 이벤트냐! 동행자냐!
▲유신준 기자는 공원인 줄 잘못 알고 문을 두드렸다가 호소카와 전 총리의 별장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다.유신준
공원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간 곳이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의 별장이었고 그의 딸 유우코로부터 온천욕까지 대접을 받았던 일은 자전거 여행 중 최고의 추억이었다. 일상을 탈출해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교감을 나눈다는 것. 몸은 일상에 묶여 있지만 영혼만큼은 항상 자유를 그리워했던 그의 체질에 맞는 일이었다.
유 기자는 일본 여행 당시 호소카와 총리 딸의 권유대로 아소산까지 함께 놀러가 도쿄에서 온다는 그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하루를 보내고 싶었단다. 하지만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곤혹스러워한 그의 아내는 자전거 여행을 일정대로 밀고 나가기를 원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교감에 치우치다가 가장 가까운 동행자와 갈등을 빚는 일은 여행지에서는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이다. 서운했지만 그들의 청을 완곡히 거절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는 유 기자.
아내의 자전거가 고장 난 일은 그 직후 일어났다. 아내의 자전거는 작은 마을인 니시사토라는 곳에서 고장이 나 마땅히 고칠 만한 데가 없었다. 게다가 호소카와 전 총리 딸의 호의를 거절해야 했던 아쉬움 때문에 짜증이 나 여행을 포기하고 싶었던 위기의 상황.
나흘씩이나 남은 여정을 중단하고 귀국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고 한다. 결국 자전거 여행의 주 경로였던 후쿠오카까지의 여정을 취소하고 기차를 타게 되었을 때는 아내와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자전거 여행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를 극복케 한 힘은 초심으로 돌아가기. 어차피 꽉 짜인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투어 형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일상 탈출을 시도했던 애초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 다시 용기가 솟아났고 여행도 잘 풀리기 시작했다.
▲부부 자전거 여행. 다정한 모습이다. 하지만 한 때 위기에 처하기도 했단다.
초보 여행자들은 지도를 따라 여행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행의 고수들은 길이 아닌 곳을 찾아다니면서 자신만의 지도를 새로 그려낸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자전거 출퇴근으로 좀 더 체력 관리를 해두고, 온라인상의 자전거 여행 고수들로부터 조언을 귀담아 들으며 사전 준비를 했다면, 시행착오는 피해갈 수 있었다는 유 기자다.
지나고 보니 국도 3호선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기보다 옛길을 찾아다녔으면 좀 더 일본 사람들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었다고. 수많은 여행자들이 지나간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개척하며 다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낯선 사람들일지라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행자들은 경계를 받지 않고 친근감 있는 대우를 받는다는 게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란다.
| | | 취재를 한 오창경 기자는 누구? | | | | 험한 세상 살아오느라 새 가슴이 된 시어머니, 5년 전 시골에 들어와 농산물 가공업을 시작한 남편 이야기를 감칠맛나게 소개해 눈길을 끈 오창경 기자. 스스로를 현실적이지 못하고 털털한 며느리라고 소개한 그는 2003년 7월 29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보냈습니다.
'지상으로 소풍 나온 두더지의 최후'를 시작으로 시골 폐교에 살림을 차린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전원생활의 쓴맛 단맛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암은 치료 가능한 '만성병'이라 믿었죠' ''벽돌깨기' 70대 할머니에게 한수 배우다' '위풍당당 우리 동네 '오지랖 여사'들'과 같은 기사를 썼으며, 특히 '도시인이여, 제발 쓰레기는 되가져가시라'는 40여개가 넘는 댓글이 붙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얻었습니다.
어지간한 음식은 직접 하는 편인 오 기자는 지난 가을엔 매운탕 기사를 올려 미식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 | | |
하지만 일정에 구애받지 않는 느긋한 여행을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도착한 뒤엔, 지도에 의지하고 지인들이 사는 곳이 목표가 되어 여정에 연연하게 되기 마련이었다고.
마음은 항상 멀리 낯선 곳을 유랑하는 꿈을 꾸지만 과감하게 현실을 벗어나는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자전거로 일상을 탈출해 자기만족 지수를 높이고 온 유신준 뉴스게릴라의 일본 자전거 여행기는 대리만족지수를 한껏 높여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앞으로 독자들은 국내의 길도 없는 오지에서, 때로는 한적한 국도 변을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를 보거든 혹시 <오마이뉴스> 유신준 뉴스게릴라가 아닌지 자세히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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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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